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명숙 (광주대학교)
저널정보
남도민속학회 남도민속연구 남도민속연구 제35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79 - 98 (2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전남지역에서 출토된 창의류는 대부분 16세기에서 17세기 중기 및 후기에 걸친 분묘들로, 소창의, 중치막, 대창의가 다량 출토되었다. 그 양식을 살펴본 결과 16~17세기에 해당되는 분묘들의 특징인 깃 모양, 섶구조, 옷길이와 트임비율, 소매모양 등의 잘 나타나 있었다. 구성은 소창의와 대창의는 솜을 두고 누빈 옷이 많았으며, 대창의는 겹으로 된 옷으로 만들었다. 소재는 명주가 대부분이었고 문능과 문주 및 무명이 각 한 점씩 있었다. 색상은 소색과 갈색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지역의 창의류 소재와 비슷하다. 유물의 형태적 특징은 깃은 대부분 칼깃이고, 당코깃이 두 점 있었다. 안깃은 거의 내어달린 목판깃 형태였다. 소매의 모양은 소창의는 직선형 착수소매이고, 중치막은 소매 중심 너비가 넓고 진동과 수구의 차이가 적은 콩깍지형 광수형태의 소매이다. 소매가 분리되는 중치막과 대창의도 있었다. 섶은 겉섶은 대부분이 칼깃이고 안깃은 내어달린 목판깃이며, 섶구조는 작은 섶이 하나 더 달린 형태의 모양이다. 묘주들이 대부분 조선중기에 해당되므로 이중섶은 없었고 단일섶과 섶끝부분에 작은 조각이 붙는 형태의 이중섶이 대부분이었다. 당은 무와 연결되므로 당이 있는 경우는 사다리꼴무이며 당이 없는 경우는 삼각무이다. 출토 분묘 중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17세기 말의 최원립장군 중치막 3점과 대창의 2점은 모두 당이 없으며 삼각무를 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삼각무가 사용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