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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필동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 제118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13 - 272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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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회학자 신진균(1913~미상)이 1945년 해방 이후 1950년 한국전쟁에 이르는 기간에 걸어간 삶의 궤적을 연구한 것이다. 1930년대 후반 동경제대 사회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한 신진균은 1941년 조선에 돌아와 전문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농촌과 가족에 대한 조사연구를 수행했으며, 그 결과를 일본사회학회에서 발표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그를 ‘강단사회학자’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해방 후 그는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교육과 문화 분야의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 시기에 그는 조선공산당에도 가입했지만, 그의 사회참여 활동은 강단사회학자의 면모를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46년 5월 이후 공산당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이 노골화되자, 이에 대항하는 정치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고, 이후 조선정판사 ‘위폐’ 사건의 제1차 공판정 밖에서 일어난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뒤 감옥에 수감되면서 그의 정치적 선택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수감생활에서의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처우, 단정 수립을 향한 미군정과 극우 정파들의 움직임은 그의 저항의지와 이념 지향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1948년 석방된 뒤에도 신진균은 학계로 복귀하지 않고, 남로당 지하당의 이론진 간부로서, 맑스-레닌주의 이론가로서 혁명적 정치활동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한 차례의 체포와 수감생활을 더 겪은 뒤, 한국전쟁 중에 북한으로 건너가 맑스-레닌주의 이론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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