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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수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10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3 - 52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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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여 강역에 대한 연구현황을 정리하고, 그 문제점과 쟁점 사항을 분석해 봄으로써 부여 성립 초기, 전성기, 쇠퇴기의 강역을 생활문화권역 중심으로 재설정해 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성립기 부여는 『사기』와 『한서』의 기록에 의하면 오환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부여의 강역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오환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서차구고분군 발굴보고서를 재작성하는 과정에서 이들 무덤의 조영집단을 오환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환의 거주지는 장성 이북의 길림 합달령 주변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성립초기부터 부여는 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성립되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더불어 고고학적으로도 기존의 토착문화인 서단산문화가 소멸되고 초기철기문화인 포자연문화로 새롭게 출현한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전성기의 강역범위에 대해서는 호룬평원설과 송눈평원설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호룬평원은 인간이 생활하기에 자연환경이 적합하지 않으며, 부여의 물질문화로 파악할 수 있는 유적,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송눈평원 지역을 부여의 중심권역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강역범위는 길림시 일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장광재령과 위호령, 서쪽으로는 송원지역에서 개원 일대에 이르는 선, 남쪽으로는 용강산, 북쪽 경계는 동류송화강 일원으로 설정할 수 있다. 전성기 부여의 강역범위 내에는 모두 5개의 생활문화권역이 확인된다. 부여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5개 문화권역 중 길림시 일대와 사평․개원 일대의 세력집단은 전연의 침입에 의해 소멸되고, 휘발하유역의 세력집단은 고구려에 복속되며, 빈현 일대의 세력집단은 읍루와 물길의 남하로 인해 지속적으로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유수 노하심유적을 중심으로 한 북류송화강 하류에 거주하던 집단이 최후까지 존속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494년 왕실이 고구려에 투항한 이후에는 일부 세력이 동류송화강을 건너 두막루를 건설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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