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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봉석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저널정보
연세사학연구회 학림 학림 제47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35 - 27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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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장면정권은 주로 ‘혼란상’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혼란’은 만들어진 것이다. 장면 정권의 혼란상을 평가하는데 있어 두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는 1950년대 말 명칭을 변경한 usom의 역할, 두 번째는 제1대 유솜처장 레이몬드 모이어(Raymond Moyer)의 역할이다. 먼저 1950년대 말 유솜은 새롭게 출범한 것이 아니다. 유솜은 기존 미국 대한원조의 기술협조의 흐름위에 위치한다. 즉 전기 주한경제조정관실이 곧 유솜으로 명칭 변경을 한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다만 미국은 이를 통해 한국에서 원조의 ‘정상화’, 곧 country team 체제를 복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대한원조의 실행 구조, 경제정책 수립에 있어서 유솜의 역할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팔리 보고서는 유솜을 공격했다 기 보다, 1950년대 미국 대한원조를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익히 알고 있던 워싱턴의 관리들이 이를 새로운 원조정책 수립을 위해 활용했다. 이것은 만들어진 혼란이다. 둘째, 레이몬드 모이어가 혼란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레이몬드 모이어는 20세기 초 아시아에 정착한 이래, 오랫동안 미국 동아시아 정책 사업에 참여한 아시아통이었다. 다만 그는 아시아 중에서 대만에 큰 관심을 보였을 뿐, 한국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한국에 개발이 아닌 구호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시각과 자세는 딜론 각서 하에 신음하던 한국정부에 내부적 불안요소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1960년대 초 장면정권을 상징하는 혼란에서 미국 요소를 잘 분해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중 첫 번째 요소는 만들어진 것이며, 두 번째 요소는 실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불안하게 봤던 그 시선은 곧 한국정부의 존립에 불안한 요소가 되었다 할 것이다. 미국 대한원조에서 미국인에 주목할 이유가 여기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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