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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종만톈 (화하혜문화박물관(華夏鞋文化博物館))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한국복식 한국복식 제4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 - 3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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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전 노예제 사회였던 상주(商周)시기에는 모든 신발을 “구(屨)”라고 불렀다. 신목이 있는 신발은 2000년 전 진한(秦漢)시기 중원 왕조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의 신을 “통화(筒靴)”라 하였다. 그러나 화(靴)를 신는 습관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이다. 남북조(南北朝)시기에 접어들어 중원 변방의 소수민족들과의 이주와 교류는 신발 양식에 영향을 주어 북방 사람들이 신는 화(靴)가 점차 한족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통화(筒靴)의 색깔도 노란색, 갈색에서 점점 검정색으로 변했고, 형태는 신목이 짧은 것, 신목이 중간인 것에서 신목이 긴 것으로 발전했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통화(筒靴)를 대체하여 중국 흑화(黑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당(隋唐)시기의 화(靴)는 백관예복(百官禮服)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의 화(靴)는 대부분 검정색의 피화(皮靴)였는데, 보통 6조각으로 재단하였기 때문에 “오피육합화(烏皮六合靴)”라고 불렸다. 이것이 중국 흑화(黑靴)의 기원이다. 당나라는 수대(隋代)의 흑화(黑靴) 형태를 답습하였으며 송나라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흑화(黑靴) 제도를 그대로 따랐고, 흑화를 “조문화(皂文靴)”로 개칭했다. 이 신발은 검은 가죽이고 안감으로 전(氈)을 덧댄 것이 특징이다. 원나라 때의 흑화(黑靴)는 관리의 표상이 되었으며 재료에 상관없이 화(靴)는 항상 검정색이었기 때문에 “오화(烏靴)”라고 불렸다. 명나라 정권이 세워지면서 “의관을 당나라의 제도와 같게 하라[復衣冠如唐制]”는 조칙이 내려졌다. 여기 에서 화(靴)는 피혁(皮革) 소재 외에도 전(氈), 단(緞) 등의 직물로 제작하였고 반드시 흑색이었기 때문에 조화(皂靴)라고 불렸다. 이러한 제도가 명·청시기 까지 이어져 중국 흑화(黑靴)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중국 흑화(黑靴)는 봉건시대 통치자의 권위와 표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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