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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재윤 (공주대학교) 박초롱 (공주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31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9 - 5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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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문헌과 고고자료를 통해 초기 국가단계의 장송의례부터 삼국의 장송의례까지 그 일면을 파악하고, 변화 과정을 검토하였다. 고고자료는 백제권의 도읍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의례 유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정지산유적은 무령왕릉 출토 묘지석을 통해 국가 의례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대개 빈장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살펴진다. 송산리고분군 방단적석유구의 A지구 구덩이는 마한과 백제의 의례적인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주목해보았다. D지구 역시 3단 방형 형태를 갖춘 제단시설로 살펴졌다. 이들은 모두 유구의 모습을 통해서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펴진다. 웅진 천도 이전인 공주 수촌리 적석유구에서도 의례 공간으로 활용한 흔적이 보이며, 이는 한성시대 왕릉인 석촌동고분군과 유사한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三國志』동이전을 통해 초기 국가단계의 장송의례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도 부여조 ‘停喪’기록은 이미 3세기 중·후반 단계에 빈장으로 추정되는 장례 풍습이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옥저조에서는 세골장의 풍습이 보이며, 시신을 가매장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하면 빈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여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마한 장송의례는 구슬을 중시하였으나 마구류와 금과 은 등을 부장하는 것은 백제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화되는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 변진조에서도 큰 새의 깃털을 장례용으로 쓰는 등 계세사상과 연관된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초기 우리나라의 각 정치체들은 주변 나라와의 접촉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특히 불교와 유교의 영향은 장송의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 사서에서 보이는 백제 장송의례는 공통적으로 服을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복을 제도로 3년 하였다는 『翰苑』의 기록에서 7세기 대 복상이 일반적 장송의례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日本書紀』 속 신라의 장송의례 모습과 고구려 무용총 벽화 등에서 음악·무용과 곡 등을 하는 모습이 살펴지는데, 백제에서도 비슷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는 중국의 東漢대 상제에 음악이 쓰여 중국의 유교 영향을 받은 상장례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백제에서는 부여 능사 북편 건물지의 빈전시설을 통해 불교와 결합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처럼 삼국의 장송의례는 불교와 유교의 도입으로, 이전의 전통적인 계세사상에 영향을 주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살펴진다. 또한 무령왕릉은 묘지석을 통해 왕과 왕비 모두 27개월의 상장 기간을 거쳐 유교식 상장제와 일치함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매지권을 통해 도교의 영향도 미쳤음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무령왕릉의 사례를 통해 당시에는 관이 안치된 빈전일 가능성이 컸음을 확인하였다. 그렇지만 빈전의 운영은 여러 기술적인 문제로 이후 매장하는 빈을 택하였다. 7세기 초반 내용을 담고 있는 『翰苑』에서 매장하여 빈하였다는 기술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백제의 장송의례는 부여와 마한 등 우리 고유의 장송의례와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장례문화가 변화되면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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