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소연 (용인대학교)
저널정보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 이화사학연구 제6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09 - 150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타키투스(Tacitus)가 티베리우스와 아그리피나 간의 갈등이 심화하는 과정을 다룬 『연대기』 4권을 통해 필자는 아그리피나가 자신과 아들들의 파멸 과정에서 그 어떤 정치력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성의 정치 행위가 불가능했던 고대 로마에서 아그리피나가 본인의 이름을 딴 파당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후대에 그녀가 황실 정치에 뛰어든 여성 정치인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파당은 황실 일원이 되려는 야망을 품었던 근위대장 세야누스(Sejanus; 생몰년: 기원전 20년~기원후 31년)가 티베리우스로 하여금 그가 예전부터 아그리피나에 대해 품고 있던 의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쓴 수단일 뿐이었다. 아그리피나의 파당이라 불린 모임의 실체는 아그리피나와 친분이 깊었던 몇 명에 불과했고, 다가오는 위험에 불안해진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불안을 티베리우스에게 직접 표출하는 악수를 두었다. 타키투스의 『연대기』 4권에 나타난 아그리피나의 무력함과 정치력 부재에 비추어 볼 때, 대 아그리피나가 파당을 이끌어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해석은 티베리우스와 아그리피나의 관계에 대한 타키투스의 기술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