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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문임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과학 인문과학 제117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7 - 5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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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필자가 3년간의 공동연구를 통해 작성한 서양영화 DB(1910-1945)를 바탕으로, 1920년대 조선의 극장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미국영화의 남성 스타들(에디 폴로 및 더글라스 페어뱅크스)과 조선의 나운규를 비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서양영화 DB는 불완전하나마 식민지시대 조선에 수입, 상영된 서양영화의 면모를 조명할 수 있게 해주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에서의 영화 관람성을 규명할 하나의 방법으로서 초기의 스타덤 분석은 유용하다. 이 DB를 통해 살펴본 바, 연속영화 <명금(1915)>을 통해 조선에서 처음으로 영화 ‘스타’ 개념을 구축한 에디 폴로가 1924년을 전후하여 그 영향력을 잃어가면서 <로빈 후드(1922)>, <바그다드의 도적(1924)>으로 인기를 얻은 더글라스 페어뱅크스가 스타덤에 오르고, 그 지위는 식민지 시대를 통틀어 압도적인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아리랑(1926)>으로 조선인 최초의 영화 ‘스타’가 된 나운규가 에디 폴로 및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와 비교되었던 건 자연스러운데, 나운규는 영화만이 아니라 「탈춤(심훈, 1926)」, 「승방비곡(최독견, 1927)」 등의 영화소설을 통해서도 일간지라는 미디어에 자신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노출하면서 스타덤을 형성한다.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와 나운규는 1920년대 후반 극장가에서 경쟁관계에 놓이기도 하는데, 액션스타라는 공통점과 동시에 이 가장 미국적인 스타와 식민지의 스타는 차이점을 지닌다. 이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구축되던 무렵의 낙관주의와 숨길 수 없는 계급적(민족적) 분한 사이의 격차가 낳은 영웅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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