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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진성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미술사와 시각문화 미술사와 시각문화 제27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92 - 219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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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흥(嘉興)의 거부(巨富)였던 항성모(項聖謨, 1597-1658)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진 ‘명청(明淸) 전환기’에 활동한 화가이다. 항성모는 1645년 청군의 가흥 침공으로 모든 것을 잃었으며 이후 피란 생활 속에 직업화가로 곤궁한 삶을살았다. 1644년 이자성(李自成, 1606-1645)의 군대가 자금성(紫禁城)을 포위하자 숭정제(崇禎帝, 재위 1628-1644)는 매산(煤山)에 올라 액사(縊死)하였다. 숭정제의 자살과 명나라의 멸망 소식을 들은 항성모는 〈주색자화상(朱色自畵像)〉 (1644년)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 나타난 붉은색은 명나라 황실의 성(姓)인 주(朱)를 상징하는 색채이다. 이 그림에는 항성모의 강렬한 유민(遺民) 의식과 망국에대한 충성심이 나타나 있다. 1645년에 가흥이 청군에 의해 함락되자 항성모는 어머니와 처자와 함께 급히 피신하여 유랑 생활을 하였다. 이후 그는 영락(零落)한 자신을 주제로 한 자화상과 산수화를 다수 남겼다. 1646년에 항성모가 그린 〈자화상〉에는 피란 생활 속에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그의 모습, 즉 직업화가로서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같은 해에 그린 〈홍수추산도(紅樹秋山圖)(1646 년), 〈대수도(大樹圖)〉(1649년), 〈대수풍호도(大樹風號圖)〉(1649년경)에는 홀로 산천을 떠도는 ‘운유(雲遊)’ 또는 ‘배회(徘徊)’하는 인물이 나타나 있다. 이 인물은 다름 아닌 항성모 자신이다. 그는 이 그림들을 통해 숭정제가 죽고 나라가 망한 ‘갑신지변(甲申之變)’, 을유년 가흥에서 일어난 청군의 만행, 동생 항가모의 자살, 어머니와 처자와 함께 간신히 가흥을 탈출했던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토로하였다. 특히 그는 이 작품들에 붉은색을 사용하여 명나라 황실에 대한 충성심과 아울러 강남 지역에서 벌어진 청군의 대학살로 인해 피로 얼룩진 세상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붉은색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동시에 피[血]로 물든 산천에 대한 아픈 기억이었다. 가흥으로 돌아온 항성모는 〈송도선산도(松濤仙山圖)〉(1652년), 〈상우도(尙友圖)〉(1652년) 등을 통해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회고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에는 1644년 이전 부유하고 행복했던 항성모의 옛 시절에 대한 추억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는 피에 대한 기억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죽기 얼마 전에 그린 <산수도(山水圖)>(1658년)에는 여전히 바위 절벽이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숭정제의 자살, 명나라의 멸망, 청군이 강남 지역에서 명나라 백성들에게 행한 대학살, 만주족 군대의 가흥 침공 등 일련의 사건들로 발생한 그의 정신적 상처[傷懷, trauma]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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