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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영교 (중원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5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91 - 32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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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년 8월 倭國은 百村江에서 羅唐聯合軍과 싸워 재앙적인 패배를 당했다. 1년 후인 664년 4월 熊津都督府의 劉仁軌가 倭國에 郭務悰을 파견하여 乾封(666)封禪에 왜국사절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실무협상을 시도했다. 封禪儀禮에서 세상의 가장 東쪽 倭國 사절의 참석여부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불과 1년 전 전쟁을 했던 倭國의 참여는 어려운 문제였다. 劉仁軌에게 협상카드가 있었다. 唐에 체류하고 있던 中臣鎌足의 장남 貞慧가 그것이었다.劉仁軌는 中臣鎌足에게 서신을 통해 貞慧를 귀국 시킬 터이니 泰山封禪에 왜국사절을 참석시켜 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中臣鎌足이 답을 했다. 劉仁軌는 貞慧의 歸國을 唐高宗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냈고, 665년 貞慧는 당고종의 사절 劉德高와 함께 唐을 떠나 경유지인 백제의 熊津都督府에 내렸다. 唐高宗이 원하던 倭國의 封禪使節도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 사절은 倭國과 唐으로 각자의 길을 떠났다. 9월 貞慧는 奈良에 당도했고, 10월 倭國의 封禪使節이 洛陽에 도착 했다. 11월 劉德高 방문으로 唐․倭 양국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再修交를 하는 자리가 왜국 왕경에서 있었다. 劉德高는 양국 사이의 밝은 미래를 언급했을 것이다. 唐과의 평화적 수교는 당시 왜국 백성들에게 어느 정도 안도감을 주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670년 羅唐戰爭이 일어나고 나서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는 熊津都督府의 사절이 연이어 왜국에 도착하면서 再修交를 주도한 大友皇子가 한반도 전쟁에 재개입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우려했다. 다시는 白村江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近畿豪族들이 동요했고, 天智의 동생 大海人皇子가 궐기하자 여기에 가담하여 壬申亂을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665년 唐倭 再修交가 672년의 壬申亂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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