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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성섭 (독립기념관)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55 - 18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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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은 불완전하나마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져왔고, 그 결과 각 부문의 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조직되었다. 충남 논산 지역에도 많은 사회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설립 초기의 청년단체들은 지역 유지 중심의 임원진 구성으로 인해 청년운동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없이 활동하면서 친목단체 또는 수양단체의 성격이 강하였다. 논산지역의 청년단체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1920년대 중반 혁신운동을 벌였으나 순조롭지 않았다. 또한 혁신을 단행한 단체들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천청년회는 논산지역의 청년단체 중 가장 실천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천청년회는 1920년에 설립되었다. 조직 초기에는 지역 유지 중심으로 한 친목단체의 성격이 강하였다. 1920년 중반부터 양촌면 출신의 愼杓晟, 張日煥, 權寧珉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운동가들이 혁신운동을 전개하였다. 지역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의 주도아래 혁신운동을 벌여 농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등 뱡향전환을 하였다. 조선청년총동맹에 가맹하는 한편 지역의 농민과 소작농의 처우개선에 노력하였다. 인천청년회는 1930년대 초반 노동조합 조직을 주도하였다. 1927년 12월 인천청년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된 권영민은 신표성과 장일환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회주의 운동가로 성장하였고, 인천청년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32년 3월 윤독회를 조직하였고, 윤독회 활동을 기반을 1932년 5월 노동조합을 조직하고자 하였으나 일제 경찰이 이를 불허하자 농민들과 함께 ‘적기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인천청년회는 적기시위운동으로 집행위원장 권영민이 체포되면서 와해되었다. 인천청년회는 논산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단체로서 계급 해방 투쟁을 선도한 청년단체였다. 또한 권영민을 비롯한 인천청년회 회원들은 지역에서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을 주도하면서 사회 변혁 주체로서의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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