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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은아 (국가보훈처)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91 - 22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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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1930년대 중반 서울지역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한 여성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을 조명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특히 국제파 ‘권영태 후계그룹’에서 카페 조직책으로 활약한 여성들에 주목하여, 1930년대 중반 여성 사회주의자들에게 부여된 ‘하우스키퍼’로서의 임무와 운동 전술적 측면에서 ‘카페 여급’의 역할을 고찰하였다. 아울러 그간의 연구에서 주목되지 못한 ‘권영태 후계그룹’ 참여 여성들의 운동 과정의 일면을 복원하여 1930년대 중반 국제파 콤그룹 간의 관계 및 활동의 단절과 연속성을 함께 추적하였다. 최경창과 홍종례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홍종갑이 지도한 독서회 활동을 통해 의식화하고, 국제선 ‘김형선 그룹’에서 여공파업을 전개하며 투쟁의 경험을 단련하였다. 이어서 국제파 그룹간의 조직선과 닿아있던 홍종갑을 통해 ‘권영태 후계그룹’에 합류했다. 제1기 후계그룹을 형성한 ‘안승락 그룹’은 서울지역 공장그룹 조직화 사업에 홍종례를 투입하고 여공파업을 지도했다. 최경창은 안임균 등과 하우스키퍼 관계를 맺고 아지트 관리와 레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1930년대 중반 합법적 영역에서 활동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 운동을 위한 일시적 수단이자 위장 전술로서 ‘하우스키퍼’와 같은 새로운 역할이 여성 운동가들에게 요구되었다. 지하운동가의 하우스키퍼가 된다는 것은 운동의 주체로서 경찰의 감시와 신변의 위험을 함께 견뎌낸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울러 그 내면에는 감정에 얽매임 없이, 보다 자율적이고자 했던 당시 여성들이 그린 모습도 투영되어 있다. 한편 국제파 그룹의 최고 지도자인 안승락이 검거되자, 김희성이 파괴된 조직 복구에 나서며 최후의 ‘권영태 후계그룹’을 형성했다. ‘김희성 그룹’에서 최경창과 홍종례는 서울시내 카페지구 책임자를 맡고 여급 생활에 돌입했다. 그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카페를 가두연락장소로 활용하고 전차금 계약을 이용해 단기에 거액의 운동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여급그룹 조직화에도 힘썼다. 또한 당시 여급들이 가진 광범한 인적 네트워크망과 높은 지명도를 활용해 주의 선전의 파급력을 높이며 당 재건조직의 기초를 심었다. 1930년대 중반 여성 사회주의자들에게 카페 여급이라는 직업과 신분은 민족해방과 이상 사회 실현을 위한 수단이자 하나의 전술로써 채택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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