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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우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반교어문학회 반교어문연구 반교어문연구 제5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05 - 13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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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용악과 그의 시가 남한 정부 수립 이후 공식적으로 삭제되고 해금 조치로 복원된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용악 시가 1988년 해금 직전 발표된 ‘이용악론’에서 ‘민족시’로 명명될 수 있었던 남한 문학장의 사정을 살펴보았다. 1988년 7월 19일 문화공보부는 일정한 선정기준에 의거해 (납)월북작가에 대한 해금을 공표했다. 기준의 핵심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30년대 문학사에서 반드시 검토돼야 할 대상’이었다. 이용악도 선정기준에 의해 해금 작가 명단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명단이 공표되기 이전인 1988년 2월 10일 윤영천의 ‘이용악론’이 발표되었다. 이는 해금이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이용악론’에 의해 이용악은 ‘민족시를 작성한 시인’으로 한국문학사에 기입될 수 있었다. 이 글은 해금 작가 명단이 공표되기 이전에 ‘이용악론’이 발표될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파악했다. 첫째, 해방 이전까지 이용악의 사상지리가 1988년 시점에서 정부가 설정한 이데올로기 문제를 초과하지 않았다. 둘째, 해금의 당위성으로 문학계에서 주장한 ‘30년대 재평가론’을 통한 ‘문학사의 복원’에서 이용악과 그의 시는 연구 대상으로서 문제가 없었다. 윤영천은 이용악의 시를 ‘민족시’로 규정했다. 이는 해금의 기준을 초과하지 않으면서 해방 후와 월북 이후 이용악과 그의 시까지 독해할 수 있는 방법론이었다. 가장 정치적이면서도 비정치적이라 여겨지는 ‘민족’이라는 인식체계가 해금 기준의 외부는 철저하게 망각시킬 수 있던 것이다. ‘민족’이라는 시각은 해금을 위해 대부분의 주체가 단서로 달았던 ‘사상의 문제’까지 무화시키기도 했다. 이 글은 해금 조치 전후로 앞다투어 제출되었던 (납)월북작가들에 대한 ‘작가론’ 중 ‘이용악론’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월북 전까지 조선문학가동맹 가입, 남로당 활동 등 이용악의 좌익 행적이 ‘민족(시)’을 통해 무사상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해금의 드라마틱한 과정과 아이러니를 동시에 그리고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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