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재혁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6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87 - 317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1682~1751)은 주자 이후 유학의 도가 동방으로 옮겨와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권상하(權尙夏)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승인 권상하의 행장에서 비록 권상하가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아 송시열과 같은 사업의 공로는 없었지만, 전현들의 학문을 잇고 이를 발전시켰다는 이유로 도통(道統)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원진은 자신이 언급한 도통의 계보를 잇기 위해 평생 노력을 경주했다. 불교와 양명학과 같은 이단, 그리고 같은 주자성리학 내에서도 퇴계학파, 낙학파에 대한 그의 격렬한 비판은 그러한 노력의 실천이었다. 기존 연구에서 김태년은 “입정학(立正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러한 한원진의 사상을 설명하고 있다(김태년, 2006). 그의 연구는 한원진의 행적을 “학문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원진이 일생동안 끊임없이 보여준 정치로의 지향을 고려한다면, 그가 얻고자 했던 권력은 단순히 학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송시열의 도통에 대해 설명하면서,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생민을 위해 도를 세워, 성대한 사업을 더불어 다툴 수가 없었다.”고 표현하면서 정치적 업적의 측면을 강조했다. 한원진은 이이와 송시열을 본받아 현실정치를 꿈꾸었으며, 이후 실제로 권력으로의 지향을 끊임없이 보여준 인물이었다. 이 글에서는 도통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실록과 문집에 나타난 한원진의 행적을 순차적으로 추적한다. 그가 사용한 도통의 개념은 이이와 송시열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업적의 측면인 정통(政統)과 학문적 측면인 학통(學統)이 결합된 것이었다. 한원진은 당대의 군주였던 영조(英祖)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권상하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항상 이이, 송시열과 같은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정치적 지향을 품었던 인물이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