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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문형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저널정보
중앙문화재연구원 중앙고고연구 중앙고고연구 제34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9 - 5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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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금마지역은 『三國史記』 「地理志」 에 의하면 백제 금마저(金馬渚)로 기록되어 있으며, 『三國遺事』 「武王條」에는 백제 30대 무왕에 대한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또한 『觀世音應驗記』에는 국내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익산(금마) 천도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적인 기록과는 달리 금마지역 일대에는 백제 무왕시기 왕도(王都)의 핵심시설인 왕궁과 국가(왕실)사찰, 왕릉, 관방 등 중요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본 논고는 익산지역의 유적 가운데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관방유적을 통하여 익산 금마지역의 방어체계를 살펴본 글이다. Ⅱ장에서는 무왕(武王) 재위 42년간(600~641) 주변국과의 대외관계 중 단연 주목되는 신라와의 전쟁기사(13회)를 『三國史記』 「百濟本紀」 기록을 통해 검토하였다. Ⅲ장에서는 익산지역 관방유적의 분포 현황과 특징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익산 관내 고대 관방유적은 금강하구 연안의 함라산 일대와 미륵산을 포함한 금남정맥의 산악지역으로 양분되어 집중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최근에 발굴조사된 익산토성(오금산성)의 경우 출토된 유물로 볼 때 왕궁의 ‘피난성’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Ⅳ장에서는 익산 금마지역의 산성 분포와 왕궁리유적 주변 하천의 위치 등을 종합해 볼 때 익산지역의 방어는 ‘왕궁’과 ‘미륵사’ 중심의 이원적(二元的) 방어체계로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즉 왕이 거처하는 왕궁 방어체계와 국찰(國刹) 미륵사의 방어체계이다. 이상의 이원적 방어체계는 면밀한 계획 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며 주변의 자연지형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극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에 이르는 사이의 공간적 범위(금마면소재지 일대)를 금원(禁園)으로 설정하여 국가 차원의 일정한 통제를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왕궁이 축조된 왕궁리유적은 전통의 입지 조건에 부합하는 하천을 적극 활용하였으며, 미륵사는 동쪽 산맥을 활용하여 조망과 교통로 상에 산성을 배치하여 방어체계를 구축하였다. 이와 같은 이원적 방어체계는 단절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으로 연결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연결점은 최근 발굴조사에서 부여의 관북리유적-부소산성(왕궁-피난성)에서 출토된 바 있는 ‘수부(首府)’명 인장와, ‘북사(北舍)’명 토기편이 출토된 익산토성(오금산성)이다. 익산토성 역시 왕궁리유적의 피난성으로 추정되며 토성의 북쪽으로는 미륵사와 연결되는 교통로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왕궁의 북쪽일대를 금원지역으로 설정하여 일반인들의 출입을 차단시킴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피난성인 익산토성과 연결시키고 미륵사를 가시권에 둠으로서 이원적인 익산지역 방어체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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