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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54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 - 3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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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義寺는 신라와 백제와의 전쟁에서 순국한 두 명의 충신이 혼령이지만 報國 하였기에 이를 기리기 위해 창건했다. 태조가 지은 글은 모두 3편이 전한다. 진공대사비문 과 開泰寺華嚴法會疏그리고 장의사재문 이다. 장의사재문 은기왕에 존재했던 신라의 사찰 관련 齋文이었다. 장의사와 개태사 모두 화엄종계통이었다. 두 재문 역시 華嚴法會와 관련 있었다. 華嚴思想이 담고 있는 이념은 국토 통일과 민심의 통합에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화엄의 敎義는 호족 정권을 넘어선 강력한 왕권 구축과 함께 국가 鎭護에 긴요한 이념이었다. 태조는 장의사 재문에서 ‘高麗舊壤平壤名山’이라고 하였다. 장의사는 ‘삼각산 장의사’였다. 그랬기에 삼각산 즉 名山인 북한산의 유래를 언급했다. 고구려의 舊壤, 그것도 별도인 남평양이었던 사실을 환기시켰다. 태조는 名山과 別都 라는 휘황한 유서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徐熙는 遼將소손녕과의 담판 직전 삼각산 이북을 고구려 영역으로 언급하였다. 고구려 영역의 중요한 지표가 삼각산이었다. 道詵의 ?記에서는 名山으로서 북한산의 비중을 일깨워주었다. 태조가 고구려 舊壤이요 명산인 삼각산을 거론한 동기는, 옛 고구려 영역의복원과 그 판도 내에서 남평양의 위상을 재건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삼각산장의사는 신라군과 당군이 합세한 거국적인 백제 정벌과 관련된 호국사찰이었다. 이곳에서 태조가 재문을 손수 지은 배경은,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가 명산 삼각산의 陰佑를 통해 후백제를 통합하려는 서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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