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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만열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43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73 - 19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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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1880-1936)와 함석헌(1901-1989)은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던 동시 대의 지식인으로 한국사 연구를 시도했던 분들이다. 20년 차이를 두고 출생했 던 그들은 직접 접촉한 바가 없지만, 함석헌이 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 사』(이하 『조선역사』)에는 동 시대의 역사가로 신채호의 이름을 유일하게 거론 하고, 역사 인식에서도 신채호와 비슷한 점이 보인다. 그 유사성을 밝혀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필자는 함석헌이 『조선역사』를 『성서조선』에 연재할 때(1934-1935), 신채 호의 저술 대부분이 이미 간행되어 식자들에게 열람이 가능했다는 점을 주시 했다. 함석헌은 고려 중기의 ‘묘청(妙淸)의 난’을 설명하면서 신채호가 이 사건 을 두고 ‘조선역사 1천년래(來) 제일대사건’이라고 한 점을 인용했다. 이 논문이 1929년에 출간된 『조선사연구초』라는 책에 실렸던 것으로 보아, 함석헌이 이 무렵 신채호의 이같은 글을 읽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채호의 역사 서술은 주로 한국 고대사에 국한되어 있다. 함석헌의 『조선역 사』중 고대사 부분이 신채호와 겹치는 부분이 더러 보인다. 한국 고대사를 민족 이동설의 관점에서 본 것이나, 단군시대 ‘신지(神誌)’에 대한 인식, 단군 이후의 역사를 ‘열국시대’로 서술한 점 등은 신채호와 함석헌에게서 거의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 한사군의 인식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삼국시대를 고구려 중심으로 인식한다는 점이 일치한다. 이는 일제 강점하의 독립운동의 기반으로서 고구려 의 대외저항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채호는 역사의 삼대원소를 때?땅?사람이라고 했으나 함석헌은 지리적 결 정론에 유의하면서도 섭리사관을 강조했다. 그러나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점에서는 두 사람이 일치한다. 신채호와 함석헌은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 사에서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서술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이것은 후일 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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