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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 - 3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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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 후 성리학적 가부장제 사회를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은 부계 동성 친족의 비중을 이성 친족보다 중하게 여기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동성의 친족을 근친으로 여기도록 하는 동성금혼이 추구되었고 이는 곧 동성 친족은 근친이며 이성 친족은 원친이라는 의도적 구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 양측 친족에 대해 동일한 친밀감을 쌓아왔었던 한국 전통적 풍습으로 인해 부계 중심의 인위적 친족 구분은 쉽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7세기까지 조선의 친족의식은 직접 대면을 통해 친밀도를 확인한 경우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같은 조상을 두고 있다 할지라도 이들을 모두 친족으로 이해하는 데는 거부감이 있었다. 결국 동성이라면 본관이 다른 이들까지도 모두 친족으로 여겨 금혼을 법으로 규정했던 중국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전통적 친족의식을 반영하여, 같은 조상을 둔 것이 확인되는 동성동본의 경우에만 금혼을 정착시켜갔다. 이와 동시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16세기까지는 다양한 가문에서 동성동본혼이 존재했음이 확인된다. 왕실과 고위 관료의 혼인에서도 확인되는 동성동본혼은 촌수를 계산하기 무색할 정도의 혈연관계 또는 본관이지만 다른 지파라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에 집중되어 있다. 당시의 현실적인 친족의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또한 16세기 후반까지는 ‘본관’에 대한 인식이 아직 확고하거나 강력하게 작용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지적할 수 있다. 『선원록』에 등장하는 수많은 혼인사례 중 확인 가능한 본관마저 누락되어 있는 등의 사례를 통해 미루어본다면 이 당시의 본관이 조선 후기와 다르게 여겨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친밀한 정도에 있었던 이성친족을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이성친족의 범주를 동성친족보다 좁게 재설정하려는 시도는 동성금혼 시책과 더불어 유학적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동성금혼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았던 것은 한국적 전통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유교사회를 향한 열망보다 결코 작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16세기까지 한국의 전통적 친족의식은 친밀도와 대면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의 발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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