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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성준선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학과)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43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53 - 18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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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 골품제에서 최상위 신분으로 존재했던 성골이 언제 어떤 배경에서 출현했는지를 검토하여, 성골과 골제 연구에 새로운 시야를 제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성골이 하나의 신분으로 실재했다는 기본 사실과 다른 신분의 상위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신라 중고기 왕권이 강화되던 상황과 관련지어 검토하였다. 성골의 출현 배경을 정치, 사회, 사상의 변화 속에서 살펴보고, 특히 종교적 신성 관념을 이용하여 기존 골제 내에서 다른 귀족들과 차별성을 드러내려 한 것이 성골 관념과 신분의 등장을 야기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불교가 신라 사회에 처음 공인된 법흥왕 대가 성골 출현의 상한선이 될 수 있겠지만, 법흥왕 대는 기존 육부 체제가 무너져간 시기이기는 해도 불교가 막 공인된 시점이라 아직 불교적 신성 관념으로 새로운 신분 관념이 창출되었을 것 같지 않다. 학계에서 폭넓게 지지를 받는 진평왕 대 성립설 역시 마찬가지로, 폐위된 진지왕의 뒤를 이어 국인의 추대로 즉위한 진평왕이 어느 순간 갑자기 불교적 신성 관념을 내세우며 성골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불교적 신성 관념은 진평왕 대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고, 그에 앞서 진흥왕 대에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에 진흥왕 통치 시기에 나타난 불교적 왕자관으로서의 전륜성왕 관념을 주목하여, 이것이 곧 성골 관념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신분으로서의 성골 출현을 가져온 직접적 배경이 되었음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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