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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경유진 (성보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31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81 - 31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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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신 괘불화는 보관을 쓰고 신체를 장엄한 여래를 표현한 괘불화의 한 형식이다. 이 형식은 야외의식이 성행했던 17세기부터 확인되므로 괘불화가 제작되었던 초기부터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괘불화는 120여 점이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 장엄신 괘불화는 전체의 약 1/6에 해당하는 20점이 남아 있다. 또한 장엄신 괘불화는 17세기는 충청도, 18세기는 경상도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제작시기와 지역의 변화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가운데 충청도는 장엄신 괘불화의 첫 작품인 무량사 <미륵불괘불도>(1627)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17세기의 제작사례를 통해 장엄신 도상이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17세기 호서지역의 장엄신 괘불화를 중심으로, 도상이 출현하고 성립되는 과정에 대해서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화승 응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응열은 호서지역에 기반을 둔 화승으로 총 8건의 활동이 확인된다. 여기에는 의궤에 기록된 2차례의 공역과 단청화원 및 시주자로 참여했던 불사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파악할 수 있는 응열의 작품활동은 괘불화 3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응열은 현전하는 작품을 통해서 학전, 경잠과 화파의 성립을 유추할 수 있는 화연관계가 나타나며, 경잠을 통해서 부휴문중과도 연결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신원사 <노사나불괘불도>(1664)의 증명과 수덕사 <노사나불괘불도>(1673)에 참여한 14인이 화엄사 <벽암대선사비>에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응열의 행적과 수덕사본의 화기를 통해 수덕사본의 원봉안처를 동학사 내지 계룡산 일대로 추론하며, 불화 제작의 활동반경을 압축하였다. 한편, 응열은 동일초본으로 추정되는 신원사본과 수덕사본을 장엄신 괘불화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두 작품에는 초기에 미륵불로 인식되던 장엄신 괘불화를 ‘영산회’ 의식에 맞춰 노사나불로 이해하려던 응열의 시도가 엿보인다. 이는 곧 장엄신의 존명이 다양하게 나타났던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오종범음집』(1661) 이후 점차 장엄신의 주존이 석가모니불로 귀결되기 시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응열은 선행작품을 수용하면서 이를 자신만의 화풍으로 발전시켰다. 즉 무량사본에서는 도상과 모티프를, 갑사 <삼신불괘불도>(1650)에서는 화풍의 계승이 확인된다. 그리고 신원사본과 수덕사본의 비교를 통해 화풍과 제작방식을 유추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처럼 응열이 호서지역의 도상과 화풍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변용시켰던 과정을 나누어 분석하였으며, 장엄신 괘불화가 지역 내에서 공유되던 상황까지 살펴보았다. 이렇듯 응열은 장엄신 괘불화가 출현하는 초기의 전개과정과 17세기 호서지역 화풍의 일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인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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