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기섭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2호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237 - 274 (38page)
DOI
10.37331/JKAH.2021.06.102.237

이용수

DBpia Top 10%동일한 주제분류 기준으로
최근 2년간 이용수 순으로 정렬했을 때
해당 논문이 위치하는 상위 비율을 의미합니다.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백제는 마한 여러 나라 중 하나였다. 국가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삼국지』 한전에 기재된 마한 50여 개 국을 병합하였는데, 병합 시기에 대해서는 4세기, 5세기, 6세기 등 학설이 분분하다.
4세기 중·후엽에 백제는 3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였다. 이를 기준으로 인구를 추산하면 4세기 중엽 백제 인구는 대략 70~80만 명이다. 이는 3세기 후엽 마한 전체 인구 50~75만명과 비슷하므로 4세기 후반경에는 마한지역 대부분이 백제의 병력 동원 대상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광개토왕비』의 ‘백잔 남쪽의 거한[百殘南居韓]’은 백제의 병력으로 동원되었던 마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의 마한병합기사, 『일본서기』의 근초고왕 관련기사, 『양직공도』의 백제주변 소국 기사 등을 검토하면 백제는 4세기 중·후엽에 이미 마한지역 대부분을 병합 내지 굴복시켰고 옛 낙랑군·대방군의 역할 및 교통로를 복원하여 왜국까지 교류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5세기에 백제가 고구려에게 군사적으로 크게 밀리고 475년 백제의 왕도 한성이 함락됨으로써 도망자와 이주민이 속출하였다. 이때 호남지역에서는 지방 수장의 선택에 따라 집단 이탈이 발생하였고, 5세기 말~6세기 초에 장고분(전방후원분)이 다수 조영되는 배경이 되었다. 백제의 이웃 집단 통합방식은 백제 문화가 다양성, 개방성을 띠도록 작용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백제의 인구와 병력
Ⅲ. 백제의 남방 영역 확장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9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1-911-001874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