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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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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윤대식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한국학 2021 봄호 제44권 제1호 (통권 제162호)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253 - 28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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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시키고 유가적 교의에 충실했던 성왕군주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부친의 요절과 차남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예종 서거후 왕위를 계승한 것은 극적 요소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이 국왕 성종의 초기 정치리더십을 결정짓는 필요조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왕대비와 훈구대신들의 정치적 후원과 돌봄의 대상의 되었고, 정치적 기반 없이 곧바로 이념적 군주로 훈육되었기 때문이다.
세조 비 정희왕후는 조선왕조 최초의 대왕대비 섭정, 즉 제도로서 수렴청정을 출발시킨 주인공이다. 먼저 정희왕후는 공적 영역의 참여자로서 독자적인 판단기준과 결정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한다. 공적 행위자로서 정희왕후는 어린 성종의 후원자라는 역할에 충실한 동시에 민생보존이라는 정치의 기본원칙에 충실했다. 한편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성종의 성년과 함께 종결되고, 청정의 리더십이 국왕성종의 직접적인 정치리더십으로 교체되면서, 성종의 사적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희왕후의 사적 돌봄을 공적 후원의 연장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정희왕후의 리더십에 내포된 사적 돌봄과 보호에의 강박이 성종으로 하여금 공사 경계 짓기를 혼동하게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일지 모른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청정(聽政)의 빛: 공적 후원을 위한 타협의 도출
Ⅲ.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종의 훈육과 자존감 형성
Ⅳ. 친정(親政)의 그림자: 방임과 무책임의 변명?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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