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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미림 (한아문화연구소)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2집
발행연도
2020.11
수록면
185 - 228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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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1900년 칙령 제41호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독도를 ‘독섬’으로 불렀다. 1947년 독도를 목격한 자들은 독도라는 명칭이 ‘독섬’에서 왔다고 즉각적으로 인식했고, 언론들도 독도를 일러 독섬, 돌섬, 석도라고 불렀다. 학자들은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정하고 군수를 두었다는 칙령 제41호의 내용을 1947년부터 언급했지만, ‘칙령 제41호’와 ‘석도’를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칙령 제41호와 석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石島가 독도임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에 와서다.
그런데 독섬, 석도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이다. 1947년에 독도를 본 국어학자들은 石島, 독섬, 돌섬을 함께 언급하고 ‘「독섬」(石島)’ ‘독섬(獨島)’으로 표기했다. 독도를 보지 못한 학자가 ‘독섬’을 항아리섬(甕島)의 의미로, 獨島를 고독한 섬의 의미로 해석한 바 있지만, 그럼에도 ‘독섬’을 울릉도의 속도라고 보았다.
이렇듯 한국인은 칙령 제41호에 石島가 명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독도를 독섬, 돌섬, 석도의 의미로 보고 있었다. 즉 石島가 獨島라는 인식은 칙령의 발굴 여부와 무관하게 성립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독도가 독섬·石島에서 온 것임을 방증한다.
우리의 언어방식에서 독도를 ‘독섬’으로 부르고 독섬을 문헌상으로는 石島로 표기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불러온 명칭에 대하여 왜 그렇게 불러야 했는지를 직접적으로 입증하라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한 요구이다. 더구나 돌을 방언으로 ‘독’으로 불렀고, ‘독섬’을 石島로 표기할 수 있음을 밝힌 자들은 다름 아닌 일본인들이었다.

목차

1. 머리말
2. 칙령 제41호의 제정 배경과 성립 절차
3. 칙령 발굴 이전의 ‘독도=독섬=석도’ 인식과 칙령의 단서 언급
4. 칙령 제41호의 발굴과 ‘독섬=석도’설과의 연계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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