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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광우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59輯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97 - 128 (32page)
DOI
10.37981/hjhrisu.2020.12.5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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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제2차 修信使로 파견된 金弘集은 주일 청나라 공사의 參贊官 黄遵憲으로부터 『朝鮮策略』을 입수해 고종에게 바쳤다. 이 책의 요지는 남하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하여 중국·일본·미국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한 정부는 미국과의 통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衛正斥邪를 기치로 내세운 재야 유림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반발하였으며, 1880~1881년 동안 이른바 척사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전개된 척사 운동 중 가장 파급력이 컸던 것은 1881년 2월 올려진 嶺南萬人疏이다. 4차에 걸쳐 진행된 영남만인소는 당색과 학맥을 초월하여 경기·충청·전라도 등 여러 지역 유림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정치·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했던 이전 만인소와 달리 척사라는 분명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되, 1881년 영남만인소의 전개 양상을 안동 유림 李壽琰(1846~1927)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疏廳日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소청일록』은 영남만인소를 소개하는데 그간 활용되지 않은 자료로서, 1880년 11월 斥邪通文이 발급된 시기부터 1881년 5월 4차 상소를 마치고 귀향하기까지 영남만인소의 전개 과정, 그 과정에서 촉발된 疏儒 간의 갈등과 여러 고초, 그리고 개항 이후 변화된 도성의 모습을 바라보는 작성자의 고민 등이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개항기 재야 유림의 척사 의식뿐만 아니라, 만인소를 통해 유림 공론이 형성되고 합의가 이루어지는 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斥邪 공론의 형성과 疏行 준비
3. 영남만인소의 奉疏와 결말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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