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한민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1집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245 - 290 (46page)
DOI
10.52271/PKHS.2019.06.111.24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에서는 1880년 2차 수신사 파견에서부터 1883년 ‘조일통상장정’ 체결까지 통상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된 조선과 일본의 교섭을 양측의 새로운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2차 수신사 김홍집은 새로 입수한 정보를 적극활용하면서 일본과의 협상에서 조선 측이 유지하거나 향후 얻어내야 할 사항들을 초안에 담았다. 세칙은 서구 열강과 일본 간의 조약개정 추이를 감안하면서 고율 관세로 책정하려 했다. 3차 수신사의 종사관이었던 이조연도 김홍집에 이어 청국공사관 관리와 서한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수집했다. 그는 황준헌에게 서한을 보내 조일 간 교섭의 진행 상황을 알리고, 초안에 새롭게 반영해야 할 사항들을 문의했다.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어윤중도 3차 수신사의 파견 전후로 청국 관리들과 접촉하면서 세칙과 관련된 논의를 이어나갔다. 임오군란 발발 이후 1883년 다케조에 일본공사가 조선에 부임하면서 중단되었던 교섭은 재개되었다. 교섭에는 미국공사 푸트, 묄렌도르프 등이 깊숙이 관여했다. 이들의 발언과 행동은 사이토 슈이치로가 남긴 보고서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조선 측의 강경한 입장과 외무경의 훈령 지시 사이에서 다케조에는 일본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킬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난처해했다. ‘조일통상장정’을 두고 열강은 청국 주재 일본공사 에노모토 다케아키에게 유감과 불만을 전달했다. 열강은 조약을 비준하지 말고 자신들과 보조를 맞추어 저율 과세로 재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의 조약개정, 각국의 세칙 등의 각종 정보를 신속하게 입수하면서 조선측은 통상교섭에서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갈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정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와 정치적으로 발생한 사건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동아시아 조약 질서 내에서 서구 열강은 조일 간의 조약 체결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조일이 도출해 낸 판 자체를 바꾸어 버렸다. ‘조일통상장정’ 체결 과정과 서구 열강의 대응은 그러한 점을 여실히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2차 수신사의 세칙초안 작성
Ⅲ. 3차 수신사의 세칙초안 수정
Ⅳ. 조일의 최종 협상 진행과 각국의 대응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911-000863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