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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승대 (전북도청)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58호
발행연도
2020.9
수록면
5 - 64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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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실학과 양명학 분야에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는 덕촌 양득중에 대한 가계 분석과 死後追崇에 관한 연구이다. 그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기초작업의 일환으로 먼저 그의 선대, 외가, 처가, 자손들의 연혼 및 세거지 변천 등의 가계 분석을 통해 양득중의 삶의 기반을 찾고자 하였다. 아울러 양득중이 죽은 후 남겨진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문집발간, 영정 봉안, 묘비 건립 등에 대한 후손들의 추숭 작업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학포 양팽손은 己卯名賢으로 도학적 이상사회를 구현하려던 학자였다. 그의 자손들은 文學과 行誼가 저명한 家學과 兩亂時節義가 있었고, 덕촌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가학의 전통을 집안의 강학공간인 ‘小心齋’를 통해 배워나갔다. 고조 양산형과 증조 양범용은 하동정씨, 선산임씨 가문과의 연혼을 통해 영암지역의 재지적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덕촌의 외증조인 은봉 안방준은 ‘도학과 절의가 하나인 眞儒’로 성혼의 학맥을 잇고 있는데, 성혼의 외증손 명재 윤증과 덕촌의 師弟의 연원이 도출된다.
덕촌의 삶의 전환기는 부인 반남박씨와 첫 스승 아천 박태초의 죽음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시남 유계의 문인인 아천은 덕촌 처가와 인척으로 맺어진 師門이었다. 이후 덕촌은 연안이씨와의 재혼하였고 명재 윤증의 高弟가 되어, 영암 영계에서 공주 덕촌으로 이사하며 관료와 학자로서의 깊이를 더해갔다.
덕촌의 자녀는 5남으로 특히 차남 양순흠의 妻家인 부안의 김서경 가문이 주목된다. 김서경은 반계 유형원과 제자이며, 그의 아들은 덕촌과 교유하였고, 손자는 덕촌의 門人이 된다. 셋째 아들 양순채는 보성의 학포 문중에 養子로 갔는데, 당시 노론의 辛壬士禍와 연계된 보성 문중에 소론 양득중이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넷째, 다섯째 아들 양순해와 양순희의 묘와 자손의 세거지가 부안지역으로 확인된다.
덕촌의 외증손 윤인기는 윤광소의 문인으로, 덕촌의 아들 양순해가 수집한 유문을 가지고 『덕촌집』을 발간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최근 현지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德村義草』 등 6책 145편의 덕촌의 遺文은 향후 시급한 연구가 필요하다. 덕촌의 영정은 그의 고향인 영계에 1864년 영당을 만들어 보관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덕촌의 묘비명과 묘갈은 1907년에 와서야 짓고, 1917년에 건립되었다. 묘비 건립을 주도한 양신묵은 보성으로 養子간 양순채의 8세손으로 당대의 양명학자인 난곡 이건방에게 비문을 요청하였고, 난곡은 비문에서 ‘덕촌에 대한 존숭의 마음, 아천 박태초의 양명학적 가르침, 후손들의 黨禍로 인한 덕촌의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함’을 역설하고 있다.

목차

요약문
I. 들어가는 말
II. 양득중의 가계 분석
III. 양득중에 대한 死後追崇
IV. 나오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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