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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화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실학학회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연구 제41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301 - 3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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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村 梁得中(1665∼1742)은 英祖(재위 1724∼1776)에게 󰡔磻溪隧錄󰡕의 진강을 건의하고 實事求是의 개념을 전하여 실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그는 양명학과 실학적 소양을 겸비한 尹拯(1629∼1714)의 문인이었으며 영조의 신임을 받는 소론계 학자관료이기도 하였다. 1864년 영암의 사림들은 그의 고향 영암에 영당을 건립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하였다. 현재까지도 덕촌 영당은 양득중의 영정을 배향하며 선조와 후손들이 조우하는 공간으로서 운영되고 있다. 본 연구는 덕촌 영당 및 영정과 관련된 현존 자료를 취합하고 영당의 건립과 영정의 봉안 과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아울러 초상의 회화적 면모를 검토하고 관련 의문점을 논의하였다. 초상 속에서 양득중은 심의에 복건을 착용하였으며 무릎을 꿇고 공수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가 착용한 심의복건은 본래 朱子(1130∼1200) 초상의 의상이었다. 심의복건은 宋時烈(1607∼1689) 초상에 선택된 이후 서인-노소론계 문인의 초상에서 빈번하게 재현된 의상으로서 유학자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圖像이기도 하였다. 양득중 초상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은 跪坐와 拱手, 즉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마주잡은 경건하고 신중한 태도일 것이다. 예의를 갖춘 유학자의 자세인 궤좌는 조선 초상화에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도상으로서 무엇보다 그의 스승 윤증의 초상을 특징짓는 자세였다. 스승 윤증의 도상을 차용함으로서 양득중은 윤증의 학문적․정치적 계승자로서의 의지를 표상한 것으로 이해된다. 양득중의 영당과 영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이들이 제작 당시 원형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당과 영정은 그간에 보수와 재제작을 통해 변형이 더해진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촌 영정에서 관찰되는 비전통적인 표현 요소는 이것이 근대의 이모본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문중에는 1910년 근대 초상화의 거장 蔡龍臣(1850∼1941)을 초청하여 초상을 다시 제작하였다는 이모 이력이 구전되고 있다. 그러나 초상의 회화적 면모는 채용신의 필치와 상이하며 오히려 당시 전남 지역에서 활약한 지역 화가의 화풍과 긴밀한 관계를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양득중의 경우에 한정하지 않고 근대기 지방에서 활동한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함을 의미할 것이다. 향후에 지속적인 고찰을 통해 양득중 영정 이모의 실재가 분명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이 초상이 지닌 의의를 더욱 분명하게 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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