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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천춘화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현대소설학회 현대소설연구 현대소설연구 제79호
발행연도
2020.9
수록면
511 - 537 (27page)
DOI
10.20483/JKFR.2020.09.7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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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남선의 『만몽문화』를 시대적인 컨텍스트 속에서 그 갈래를 읽어내고자 한 글이다. 최남선은 1938년 4월 30일 만주 건국대학의 유일한 조선인 교수로 부임하였고 대학의 문교연구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만몽문화”를 강의하였다. 『만몽문화』는 그때의 강의록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만주 건국대학은 만주국의 건국정신을 선양하고 만주국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학부였고 건국대학연구원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와 제도 및 방침에 대한 학문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연구기관이었다. “오족협화(五族協和)”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만주국은 1935년 푸이(溥仪)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황도정치(皇道政治)”로 선회하고 식민지말기에 이르면 “신도(神道)”의 강조와 함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만주국의 건국신으로 신봉하기에 이른다. 최남선의 『만몽문화』는 이와 같은 만주국의 새로운 기원의 창출과 맞물려 있었다. 『만몽문화』에서 최남선은 중국 동북지역의 기원 설화는 부여의 건국신화였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일본의 기원으로서의 조선을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글은 최남선의 이러한 행보를 만주국적 맥락에서 짚어본 것이다.

목차

요약
1. 서론
2. 만주 건국대학과 『만몽문화』
3. ‘건국신화’ 만들기와 기원의 창출
4. 만주시절의 최남선과 협화의 논리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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