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준성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9호
발행연도
2020.9
수록면
131 - 163 (33page)
DOI
10.37331/JKAH.2020.09.99.13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삼국사기』고구려본기의 동명성왕과 유리왕의 즉위년 기사는 서로 다른 건국신화를 전하는 것과 같이 유사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주몽과 유리는 서로 다른 시기에 부여로부터 이주해온 세력으로서 주몽 집단은 졸본부여 세력과, 유리 집단은 송양의 비류국 세력과 서로 결합하였는데,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이후 왕계를 일원화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주몽과 유리의 왕계 상에 단절적인 면이 보인다.
주요 정치세력의 위치를 비정해보면, 건국지로 지목되는 ‘졸본’은 高力墓子村 일대이다. 상고성자고분군~망강루를 연결하는 공간은 이 지역에 더욱 오랫동안 정착해있던 정치세력, 즉 ‘累世爲王’하였다는 비류국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졸본부여의 경우 부이강과 혼강의 합류 지점에 정착한 후 기원 전후 시점에서 환인 일대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고 보았다.
한편 유리 집단과 송양의 비류국 세력의 결합, 주몽 집단과 졸본부여 세력의 결합, 그리고 이들의 각축 과정이 모두 비류부(연노부)의 형성 과정으로 설명된다. 고구려 건국 초기에는 비류부 세력들 중 유리 집단과 송양의 비류국 세력이 국정의 주도권을 행사했으나, 이후 주몽과 졸본부여 세력이 대무신왕대 이후 남하하여 집안 및 통화 지역에 자리잡은 부여계 유이민 세력(연나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 계루부 왕실로 등장하였다. 계루부의 등장은 곧 환인 중심에서 집안 중심으로 고구려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바, 즉 왕실교체와 천도는 결국 계루부의 등장과정과 함께 진행되었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부여 세력의 남하와 정치세력 재편
III. 계루부의 등장과 천도 · 왕실교체의 시점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0-911-001310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