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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연심 (부산광역시 문화유산과 시사편찬)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9호
발행연도
2020.9
수록면
33 - 58 (26page)
DOI
10.37331/JKAH.2020.09.9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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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가야진출이 본격화 되자 가야제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적극 대응하고자 하였다. 즉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백제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한 반파국은 무력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왜의 세력을 끌어들여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가라국은 백제의 기문 · 대사 진출이 마무리될 무렵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게 된다.
그러나 가라국과 신라의 결혼동맹은 파탄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가야제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분열하게 된다. 안라국은 결혼동맹 이후 신라의 군사적 압박이 강해지자 ‘안라회의’를 개최하게 되는데, 안라국은 ‘안라회의’를 계기로 친신라 정책을 본격화한다. 게다가 신라는 ‘안라회의’에 백제에 비해 낮은 관등의 관리를 파견하였지만 고당에 올라 안라국과 함께 회의에 참여하였다. 이는 당시 신라가 안라국에 대해서는 군사적 압박 보다 친신라 세력을 이용한 가야진출을 전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의 가야진출이 본격화 되면서 가야제국 내에서 친신라 세력의 활동이 본격화 된다고 할 수 있다. 신라는 가라국과의 결혼동맹 이후 가야 진출을 친신라 세력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고자 하였는데, 이에 따라 남부가야지역을 중심으로 신라의 침략이 본격화 되면서 친신라 세력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안라국은 친신라 외교 정책을 통해서 신라와 백제의 공세 속에서 독자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530·40년대 안라국 관련 기사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532년 남부가야 멸망 이후 가야제국 내 친신라 세력은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보다는 신라의 가야병합에 적극 동조하였을 것이다. 이는 김유신 등 가야계 인물들이 신라 귀족사회에 편입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가라국과 신라의 결혼동맹과 신라의 남부가야제국 병합
III. 안라국의 친신라 정책
I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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