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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국문학회 국문학연구 국문학연구 제4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5 - 3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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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정읍사>와 정읍 지역문화권의 관계를 살피고, 해당 작품과 지역의 문화사적 위상을 조명하고자 한다. <정읍사>의 형성이 백제 시대부터인지, 고려 시대 이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 제목을 소개하고 있는 『고려사』․「악지」의 「삼국속악」 조에 보이는 다른 백제가요 역시 절반 이상이 후기 신라 이후의 것들이다. 따라서 「삼국속악」 조만을 근거로 <정읍사>의 형성 연대를 백제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들 백제가요에 나타난 지역성, 여성화자와 애정 주제 등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백제가요가 고려속요와 공유하고 있는 것들로서, 신라 향가의 수도권 중심, 남성화자, 종교적 지향과는 대조적이다. 비단 <정읍사>뿐 아니라, 「삼국속악」 조의 백제가요 자체가 향가와는 대조되는 나름의 전통을 수립하여 고려속요에 물려준 것이었다. 정읍 지역에서 <정읍사>가 형성된 문화사적 기반으로, 석탑과 고분군을 통해 확인되는 그 역량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읍에는 현존 백제 양식 석탑 37기 가운데 5기가 남아 있는데, 단일 지역으로 최다이다. 시기상으로도 11~14세기에 고루 나타나 있어, 무신 집권기 즈음까지도 정읍이 ‘백제’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지속하고 있었음을 보인다. 그리고 다수의 고분군에 반영된 마한 문화의 잔재를 통해, 정읍의 문화적 정체성이 마한과 백제에 두루 걸쳐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정읍사>의 창작 시기에 대한 논쟁을 벗어나, 백제문화권의 중추였던 정읍 지역의 문화적 유산으로서 그 정체성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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