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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10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017 - 1,037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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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혁(黃赫, 1551∼1612)은 선조대와 광해군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호는 독석(獨石)이다. 그의 생애는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시대 정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황혁은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시문으로 이름난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이다. 황혁은 기대승(奇大升)의 문인이었으며 아버지 황정욱과 함께 문명(文名)이 높아서 부자가 송나라의 소순ㆍ소식 부자에 비견되었다. 황혁 가문은 이씨 왕가와 두 차례의 혼인으로 연계되었다. 황혁은 성종의 막내딸 정숙옹주의 손녀를 아내로 맞았고, 황혁의 사위는 선조의 6째 왕자 순화군(順和君)이다. 황정욱ㆍ황혁 부자는 문장이 뛰어나고, 왕실과의 혼맥으로 가문의 영달을 누렸지만, 전란과 당쟁으로 인해 역사적 고비에 처하여서는 화액을 당하고 멸문의 지경에 이르렀다. 황혁은 16세기 말의 전란과 17세기 초의 정변을 겪으면서 세 번의 큰 화액을 겪었다. 첫째, 임진왜란 전해인 1591년에 동인이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정철을 조정에서 축출할 때, 황혁도 정철 일당으로 지목되어 파직 당했다. 둘째, 임진왜란 중에 함경도에서 왜군에 피랍되어 왜군의 강요로 선조에게 항복권유문을 쓴 일로 파직 당했다. 셋째, 이이첨이 일으킨 김직재 무옥(誣獄) 사건에 연루되어 결국 죽음을 당했다. 김직재 무옥은 대북파가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음모로 발생한 사건인데, 이로 인해 소북파 인사뿐만 아니라 황혁 등 소북파에 속하지 않은 인사들도 많이 연루되어 화를 당했다. 인조반정 이후 황혁은 복관되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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