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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문준 (건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논집 한국철학논집 제76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9 - 3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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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촌(厖村) 황희(黃喜, 1363~1452)는 태종과 세종을 보필한 명재상이다. 그는 세종을 보필하여 국정을 운영하면서 세종의 신중한 조언자로서, 왕도사상에 기반하여 군신(君臣)이 공치(共治) 협치(協治)하는 전형적인 왕도적 재상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황희가 정승으로서 발휘한 리더십은 두 가지의 개인 역량에 기반한 것이었다. 한 가지는 인물됨의 신중함과 큰 국량,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정사를 처리함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실무 역량이었다. 첫째, 황희는 급변하는 권력의 향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인생동안 환국 시기마다 신중한 처세로 일관하였고, 관대한 인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정에 임해서는 실익을 우선하고 원칙을 중시하여 백성에게 냉혹한 처사도 불사하기도 했다. 둘째, 황희는 태종 때부터 도승지와 6조 판서 등 정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국정 전반을 보는 시각이 뛰어나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하여 현실적인 결단력과 안정된 국정 운영 능력을 발휘했다. 황희가 행한 재상의 리더십은 유교정치의 왕도사상에 기반한 신도(臣道)를 행한 것이다. 왕도사상의 입장에서 재상이 임금을 섬기는 임무는 임금에게 바른말로 직언하고 아랫사람을 잘 거느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황희는 임금에게 강직한 직언을 많이 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추천했다. 황희는 세종이 개혁 정치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한 국정 현안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비판적 조언자의 역할을 했다. 황희는 재상으로 재직하면서 주요 정책 시행에 세종과 의견을 달리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세종이 추진했던 북방정책과 조세제도 개혁, 그리고 세자[문종] 대리청정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황희는 조정의 구심에서 임금과 신하들의 이견을 조정하고 보합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황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로는 장유(張維)와 허목(許穆)은 황희가 재상으로서 탁월하여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하였고, 이이(李珥)와 허균(許筠)은 도학적 견지에서 평가할 때 황희가 현신(賢臣)이었으나 요순시대를 열기에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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