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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근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9 - 6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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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초 몽골 제국의 건설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칭기스칸 즉위 이후 몽골은 금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로 인해 1214년 금은 수도를 남쪽의 汴京으로 옮겼다. 이후 남송은 세폐의 제공을 중단하고 몽골 제국과의 연대를 모색학기 시작하였다. 거의 동일한 시기 몽골 제국 역시 남송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금의 정복을 위해 남송의 영역을 통하여 우회 공격하는 방략을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우구데이는 1230년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금을 공격하였다. 동시에 남송에 사자를 파견하여 금을 공격하기 위한 공격로를 내어달고 요구해 왔다. 남송은 이에 굴복하여 그 요구를 수락하고 몽골 군대에게 군량까지 제공하였다. 몽골의 공격을 받은 금은 다시 남방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 직후 몽골은 다시 남송 측에 사신을 파견하여 금 공격을 위한 연맹을 제의하였다. 남송은 그 제의를 수락하였다. 몽골과 남송의 연합군에 의해 마침내 금은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남송에서는 하남 일대의 수복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북벌이 결정되어 남송의 군대는 진군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남송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군량 부족에 더하여 몽골군의 역습으로 아무런 성과 없이 되돌아왔다. 端平入洛은 남송과 몽골 사이에 맺어진 연맹을 뿌리 채 뒤흔들었다. 이후 양국은 전면적인 대치와 전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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