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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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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4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9 - 4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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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50년대 세계문화자유회의(CCF)라는 국제단체의 활동을 통해 미국 문화냉전의 두 축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미국 헤게모니가 충돌하는 모습을 탐구한다. CCF는 미국과 서유럽의 ‘반공 좌파’를 자처했던 일군의 지식인들에 의해 1950년에 탄생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문제는 CIA가 이 단체의 활동을 은밀하게 후원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CIA 요원 출신의 CCF 사무총장 마이클 조셀슨은 이 단체 내부에서 벌어졌던 반공주의 강온파 사이의 논쟁에 깊이 개입했다. 조셀슨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로 구성된 반공 온건파를 지원하여, 강경 반공 투사들을 이 단체의 활동에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조셀슨과 온건파는 매카시즘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반감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유럽인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CCF의 활동에서 과격한 반공주의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이 단체의 창립자 시드니 훅이 이끌었던 반공 투사들은 조셀슨의 공작과 온건파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신념인 공산주의 타도를 소리 높여 외쳤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 반공 강온파 간의 노선투쟁은 한때 서방세계 최대의 국제 지식인 단체였던 CCF를 쇠락의 길로 이끌었다. 이 단체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독립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반공 첩보기관 CIA’라는 이분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본 논문은 이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나 반공이데올로기와 미국 헤게모니 사이의 긴장이 어떻게 미국 문화냉전의 가장 야심찬 시도로 알려진 CCF를 쇠퇴와 몰락의 길로 몰아갔는지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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