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중국학회 중국학보 중국학보 제91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69 - 304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1900년 의화단 사건 당시 의화단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던 '남인', 구체적으로는 남인 출신 경관에 대한 상해 신상의 구조활동을 분석했다. 동남제급선회의 난민 구조활동은 광서26년 8월(1900년 9월) 중순에 시작하여 광서27년 2월(1901년 3월)말에 종결되었다. 이는 시칙경 등이 중앙정부의 요구로‘籌辦陝西義賑駐滬總局’을 개설하여, 1900년 섬서성 大旱災 구제를 위한 의진활동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1901년 4월 무렵까지 구조활동은 지속되었는데, 다만 그 내용이 전쟁난민에 대한 구조에서 북경 내 일반민(貧民)에 대한 구제[春賑]로 변화했다. 『申報』1901.2.27., 「東南濟急會接辦京畿春賑公啓」. 제급선회의 설립 계기는 상해 신상들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동향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이홍장의 직접적인 지시(面諭)가 결정적이었다. 최초 상해지역 紳商의 주도로 시작된 난민 구조활동은 성선회 등의 참여로 동남제급선회로 확대 개편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조대상도 ‘강절’지역 인사에서 ‘東南’ 각성으로 확대되었으며, 구조대상도 官․紳에서 商․民까지 모두 포괄하는 조직으로 변모했다. 이들의 구조활동의 배경에는 ‘정무기황’ 이래 출현한 상해지역 義賑전통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으며, 특히 동남제급회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천명한 서양의 紅十字會를 모델로서 차용함으로써, 열강과의 원할한 관계를 형성하여 난민 구조에 상당한 협조를 얻어내기도 했다. 제급선국이 동남제급선회로 확대되면서, 활동무대도 청강~덕주에서 북경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동남제급선회의 참여자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정무기황’(1877~78년)이래 義賑활동을 주도해온 상해 義紳들이었다. 이들은 정무기황을 계기로 이홍장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이홍장이 주도한 양무기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특히 상해 의진활동은 明淸이래 선회․선당이라는 자선 전통의 흐름속에서 탄생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경자년 난민 구조활동을 보면, 전통적 자선 전통→義賑→전쟁난민 구조활동→紅十字會라는 흐름속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난민구조는 일상적인 재해구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의진은 ‘不分畛域’을 중시한 반면, 제급선국은 설립 초기에는 ‘畛域’을 구분하는 다분히 鄕誼的 논리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그 원인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경자사변 당시 의화단의 주요 공격대상이 ‘南人’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아울러 이러한 ‘향의적’ 요소가 실제 구조경비 모금 시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동남제급선회의 구조 방식을 ‘公濟’․‘指濟’․‘專濟’로 구분할 수 있는데, 公濟는 출신 성을 따지지 않는 보편적 구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실제 구조 대상이 북경․천진 지역 일반민까지 포괄하지는 못했다. 즉 ‘남인’에 한해 ‘畛域’을 구분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指濟는 구체적인 지역(畛域)을 지정하고 있고, 專濟는 특정한 개인을 지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公濟 보다는 더욱 지방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구조방식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홍십자회의 기치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실제 운용 과정에서는 오히려 농후한 지방주의적 색채를 띠었다. 이홍장이 동남제급회의 성선회를 통해 경관 구조활동에 관여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동향인 안휘성 경관에 대한 구조를 특별히 고려한 점도 향의적 성격이라 볼 수 있다. 구제금 지급액을 100량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재해구제 시 이재민에게 지급하는 액수에 비하면 상당히 많다. 구조대상을 비록 관․신에서 商․民까지 확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실제를 보면 주로 京官 위주로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재는 국가의 元氣이고, 京師는 인재의 요람으로, 경사의 士․商을 구하는 것은 즉 국가의 원기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 점,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남인이 의화단의 주요 공격대상이었다는 점에서 경자년 난민 구조활동은 일반적인 재해구제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비록 활동 기간이 7개월에 불과하지만, 무엇보다 경자년 구조활동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민간 자발적 전쟁난민 구호 활동이라는 점, 또한 동남제급선회가 천명했듯이 국제적십자사의 기치를 표방한 점, 그리고 동남제급선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1904년 東三省紅十字普濟善會와 上海 萬國紅十字會로 계승된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