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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철웅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41집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43 - 7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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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 세력들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고려의 제도를 개혁하며 체제를 정비해 나갔다. 그리하여 고려 때에 성행한 도교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조선초기 도교의 수용 문제에 있어 권근<SUB>權近</SUB>을 주목하여 보았다.
성리학자로서 권근은 도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도덕경』의 유행을 비판하며 노장사상의 확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도교의 불로장생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으며 도관인 태청관의 수리를 반대하였다. 그렇지만 권근은 시‧문에서 노장 서적을 자주 인용하였다. 그리고 태종3년(1403)에 지은 「제소격전」에서 도교가 백성 구제에 도움이 되며 복을 내려준다고 하였다. 이는 권근이 도교의 종교적 기능과 효용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권근은 동시대의 성리학자 중에서 가장 많은 14편의 청사를 저술하였다. 조선시대의 청사 6편은 공신도감의 주도로 왕의 축수를 위해 거행된 초례의 것이었다. 그 내용은 모두 공신들의 충성 맹세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공신도감의 주관으로 거행된 초례는 국왕에 대한 공신들의 충성을 재확인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겠다. 권근의 청사에는 기원 목적에 따라 해당되는 위력이 있는 도교신이 등장한다. 이는 조선에서 도교신의 영험성을 수용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초례가 도교 의식<SUB>儀式</SUB>에 따라 소격전에서 거행되었음이 그의 청사에서 확인된다. 이렇듯 조선에서는 고려 때 성행한 도교를 수용하여 초례를 국가 차원에서 거행하였다. 그리고 권근은 청사에서 도<SUB>道</SUB>에 대해 서술하면서 『도덕경』과 『장자』를 인용하였다. 아울러 청사에서 그는 유학 서적도 인용하였다. 권근은 청사를 작성하면서 성리학자로서 도교와 절충점을 찾았던 것이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권근의 도교 인식
3. 권근의 청사와 조선초의 도교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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