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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은제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4집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1 - 47 (47page)
DOI
10.52271/PKHS.2020.03.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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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려말 사전개혁 당시 공전과 사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12~14세기 공과 사 개념의 변화를 분석하였다. 공과 사 개념은 해당 시기를 대표하는 문인의 저작 『서하집』, 『동국이상국집』,『익제난고』, 『목은문고』, 『삼봉집』의 공과 사 용례를 통해 확인하였다. 공과 사의 용례는 12~13세기 10,000자당 3~4.5자 정도 사용되다가 14세기 전반기 감소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14세기말에 이르면 역전되는데 『삼봉집』 단계에 이르면 공과 사의 사용빈도는 10,000자당 6~7.5자로 증가한다.
변화는 빈도수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12~14세기 전반기까지 공은 주로 ‘국가 혹은 관’, ‘다수’, ‘공평·공개·공식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14세기말이 되면 공은 公正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가졌으며, 天理 혹은 公理, 公義로 사용되어 세상의 질서 혹은 이치를 뜻했다. 사 역시 개념의 변화가 있었다. 12~14세기까지 사는 ‘자신’, ‘민간’, ‘비공식 · 비밀’, ‘치우침 혹은 편애’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으나, 14세기가 되면 그런 의미에다 ‘임의 혹은 마음대로’라는 의미와 ‘사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었다. 특히 사욕은 천리에 대립하였고 때문에 사는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사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고려말 전제개혁 상소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상소를 올린 이들은 사전을 민간의 토지 혹은 사인이 경작·수취하는 토지로 간주하면서도, 사욕이 관철된 토지 즉 부자가 욕심을 부려 주고받은 토지이자 겸병된 토지로 이해했다. 때문에 사전은 인륜을 금수에 빠트리고, 난의 수괴가 되는 존재였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거나 천리를 거스르는 토지였다. 그들은 사전을 혁파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했고 사전혁파를 통해 공정한 과전제도의 수립을 천명했다. 이 때 혁파된 사전은 사욕이 관철된 토지이자 공개되지 못한 은닉된 토지이자, 천리를 거스르는 토지이지, 私人 혹은 민간의 토지가 아니었다. 때문에 사전을 혁파하여 수립한 과전법에서도 사전은 규정되고 보호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 수용 이후 공 · 사 개념의 변화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려후기 문집의 공·사 용례와 빈도수
Ⅲ. 1기의 공과 사 용례:『서하집』과『동국이상국집』
Ⅳ. 2기의 공과 사 용례:『익제난고』,『목은문고』,『삼봉집』
Ⅳ. 공 · 사 개념의 변화와 그 함의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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