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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혜원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52호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55 - 8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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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상해의 한인 개신교인들이 1919년을 전후하여 재상해 개신교 선교사들과 맺은 관계성을 고찰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처음 한인 개신교인들은 상해YMCA의 락우드 선교사와 관계를 맺은 후, 락우드의 주선으로 미해군YMCA에서 예배를 시작하면서 해당 기관의 전임 이사장이었던 미북장로회의 조지 필드 피치 선교사와 조우하게 되고, 피치 선교사를 통해 북경로18호에 있던 ‘장로회예배당’으로 연결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북경로18호가 현재의 북경동로280호이며, 그곳에 있던 것은 단순한 ‘장로회예배당’이 아니라 당대 중국 최대 출판사였던 미북장로회의 ‘미화서관’과 관내 채플이었던 것을 밝혔다. 또한 북경로 18호에는 미화서관 외에도 남북 감리회의 출판사인 화미서국의 판매부, 그리고 미화서관과 화미서국이 함께 설립한 협화서국이라는 서적 판매대리점이 함께 거하고 있었으며, 한인들은 북경로18호 미화서관의 관내 채플인 로리기념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또한 그 중 일부는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선교기관 및 선교부들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1919년 미북장로회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 1920년 북경로18호가 팔린 뒤 한인교회가 남감리회의 교회로 옮겨 예배를 드리게 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임시정부 요인 중 많은 수를 차지했던 상해한인교회 교인들을 통해 임시정부 요인들은 1919년 4월부터 1920년 3월까지는 북경로18호 예배당에서, 1921년부터 1927년까지는 남감리회의 삼일당 예배당에서 임시정부 관련 대형 정치 집회를 열 수 있었다.

목차

I. 머리말
Ⅱ. 상해한인교회의 예배 공간 확보를 위한 여정: YMCA에서 북경로18호로
III. 북경로18호의 위치 고증
IV. 미화서관과 임시정부의 관계
V. 미화서관인가 협화서국인가
Ⅵ. 북장로회에서 남감리회로
Ⅶ.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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