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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6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03 - 13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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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말⋅오대⋅양송시대 지금의 洞庭湖 이서⋅이남의 鄂西⋅湘西 지역에는 각종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인들은 이들을 ‘계동제만’이라 불렀다. 이들에 대한 선행 연구의 문제점은 먼저 단대사적 구분에 입각한 서술에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중화제국 중심적 시각에 기인한 것이다. 당말은 호남 지역에서 팽씨와 마씨가 각기 ‘만⋅한 권력의 동시 교체’를 이룬 시기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단대사적 서술에서 주목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계동제만과 관련하여 ‘내경’이라는 개념이 주목된다. 이러한 ‘내경’ 연구는 10~12세기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며, 중국학계의 ‘토사학’의 발전과 ‘내지의 변연’이라는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필자는 본고를 통해 단대사적 서술에서 홀시되기 쉬운 오대말⋅북송초라는 시기에 주목하면서, 당시 혼란스러웠던 호남 정국에서 만족들이 모두 동일한 선택을 했는지의 여부를 추론해 보고, 이를 새로이 등장한 송조와의 관계 설정 문제와 함께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마희범 사후 벌어진 호남의 내홍 과정에서 형성된 ‘천책부 집단’, ‘낭주 집단’, ‘낭주 토착 집단’은 모두 본래 마씨 혈통에 근거한 정통성을 공유하였으나, 종실이 배제된 이질적인 집단인 ‘낭주 토착 집단’은 그러한 지역적 전통을 거부하고 내홍 과정에서 참전한 만족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인물을 옹립하는 과감한 선택을 하였다. 사실상 이 시점에서 호남의 한인 세계에서 마씨의 정통성은 퇴색되어 갔고 남당에 의해 초가 멸망당하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마희범 시기 ‘계주동주’에 의한 경계 획정과 동시에 ‘도서주’ 지위를 보장받았던 팽씨는 이 서약에 의해 내홍의 참여에 자연히 제한을 받게 되었고, 이는 ‘내경’ 경내 만족들의 활발한 참여와 대비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한인 정권인 송조가 호남을 편입하게 되면서 팽씨를 중심으로 한 계주 만부는 이전의 한인 정권인 초국과 맺었던 ‘계주동주’에 의해 확보된 권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오대말⋅북송초의 호남 정국을 연속적으로 파악하면서, ‘내경’을 기준으로 한 만족의 구분을 분석에 반영하였다. 이와 더불어 당말 이래 계동제만의 이동 및 분포 정황, ‘계주동주’의 서약이 가져온 정책의 변화, 태종 이후 송조의 계동제만에 대한 기미정책의 변용과 전환 등은 여전히 해명을 기다리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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