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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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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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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퇴계학논총 퇴계학논총 제33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83 - 20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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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사실상 유가사상의 상징물이다. 명륜당 역시 동양사상과 문화의 眞髓를 전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한문학, 나아가 유가사상의 수용 여부와 관련하여 공자묘와 명륜당의 존재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유구에 공자묘가 창건된 것은 1674년이다. 1671년 겨울, 당시 쿠메무라 총역이자 紫金大夫인 金正春이 섭정인 向象賢을 경유하여 尙貞王에게 啓奏하고 허락을 받았다. 건립에 드는 경비는 왕자 이하 일반 선비들이 기부금 4천貫을 모았고, 부족분은 公費로 처리했다. 1672년에 廟地를 쿠메무라 泉崎橋頭로 정하고 곧바로 공사를 시작하여 1674년 11월에 준공했다. 유구의 명륜당은 1718년 쿠메무라의 공자묘 옆에 건립되었으며, 유구 최초의 공적 교육시설이었다. 유구 명륜당 창건의 계기는 1683년 尙貞王의 책봉사로 유구에 온 王楫의 학교설립에 대한 요청에 의해서이다. 이에 1717년 정순칙 등이 連名으로 건립을 요청했고, 다음해 건립되었다. 유구의 공자묘 창건과 명륜당 건립의 의미는 ①중국적 시스템 도입과 ②유가사상의 수용이다. 그러나 공자묘와 명륜당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44년 10월 10일 나하대공습으로 모두 불탔다. 이후 社團法人 久米崇聖會가 1975년 1월 25일 현재의 위치(나하시 若狹)로 옮겨 공자묘와 명륜당 낙성식 및 부흥 후 제1회 釋奠을 시행했다. 유구 명륜당에서는 현재에도 󰡔논어󰡕와 한시 강좌 및 쿠메무라 역사 관련 공개강좌가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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