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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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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21세기기독교사회문화아카데미 신학과 사회 신학과 사회 제33권 제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7 - 12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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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평양대부흥운동 사회변혁의 힘이 지속성을 잃고 약화된 원인을 기독교 내부의 분열, 특히 상업자본과의 연관성에서 찾고 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평양에 자유와 평등사상을 확산시키고 계급과 성별에 의한 차별을 타파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시민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이 사회변혁의 힘은 1920년 식민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 연구는 대부흥운동의 지속성 약화 원인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신앙심과 애국심의 분열이다. 기독교 도입 초기 내부에 공존하던 신앙심과 애국심은 1919년 3.1운동의 실패 이후 민족주의와 실력양성론이 대두되면서 분열하기 시작한다. 둘째는 도시의 공업화와 자본의 발달 과정에서의 노동자 외면에 있다. 1920년 평양의 기독교 지식인과 자본가들은 소외된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공장을 세운다. 하지만 1925년 이후 기독교 자본가들은 노동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동자를 외면하고 식민경찰의 보호를 받아들인다. 셋째는 기독교 금욕운동의 배타성이다. 평양 기독단체의 금욕운동은 기생들의 거주지를 도시 밖으로 이전할 것을 결의하는 등 하층민의 경제적 상황을 무시하고 그들을 정죄한다. 결국 신사참배를 결의하기 8년 전인 1930년, 평양의 기독교는 이미 시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으며 사회변혁의 힘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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