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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6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21 - 140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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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의하면, 웅진의 대통사는 신라 법흥왕이 양 무제를 위해 양 대통 원년, 즉 527년 건립했다. 그런데 이 기록은 당시 웅진 지역이 백제의 도성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아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심지어 ‘웅진 대통사’의 존재 여부조차 부정되기도 했지만, 최근 대통사지로 전해지고 있는 공주시 반죽동에서 또다시 ‘大通’銘 와당이 정식 발굴됨으로써 백제 대통사의 존재가 확실해졌다. 본고는 그동안 대통사 창건과 관련해 많은 의문을 불러 일으켰던 세 가지 문제, 즉 연호를 채택한 사찰 이름의 가능 여부, 창건 시기, 창건 목적 등에 대해 중국의 사례를 통해 그 해답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먼저 寺名의 경우, 6세기 전기 북위 도성 낙양에서 황제의 연호를 채택한 景明寺와 正始寺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양 무제의 연호를 채택한 대통사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가능함을 확인했다. 사찰의 창건 시점에 관해서는 중국의 6세기 사례와 한반도 삼국시대의 創寺 기록을 분석, 문헌 속에서 언급한 창건 연대가 꼭 완공시점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사찰의 이름이 정해진 시기도 창사 시점이 될 수 있음을 논증함으로써, 527년창건설이 가능함을 제시했다. 양 무제는 동아시아에서 불교적 성왕, 즉 전륜성왕적 통치의 전범을 만들었다. 그는 황권에 대립했던 귀족중심의 승단세력을 통제하고, 전륜성왕적 통치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는데, 527년은 바로 이와 같은 무제의 이상을 실현해줄 同泰寺가 완공된 시점이다. 동태사 완공과 함께 무제는 이를 기념하여 연호마저 동태의 反語를 취해 대통으로 바꾸었다. 성왕의 대통사 창건은 무제의 이와 같은 정치적 전범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성왕은 무제처럼 계율을 중시하여 謙益을 우대하고, 전륜성왕에 의한 호법통치를 설한 『열반경』을 중시함으로써 국내 통치의 안정과 왕권 강화를 기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사는 성왕의 전륜성왕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백제판 동태사’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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