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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5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215 - 23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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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청기와를 화려하고 사치스럽다거나 공력이 많이 드는 건축재로 인식하여,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하였다. 왕권을 상징하는 궁궐에서도 정전이나 편전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고, 현존하는 청기와 건물도 창덕궁 선정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을 좀더 살펴보면 조선전기에는 경복궁의 寢殿이나 宮門·慶會樓를 청기와로 이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창경궁의 인양전과 명정전 등을 청기와로 이으라는 下命도 있었다. 이 중 경복궁의 침전은청기와편이 발굴된 바 있어 기록과는 달리 청기와로 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광해군에 의한 궁궐영건 당시 인경궁에 청기와건물이 3동 지어진 것이 확인되는데, 인조대에훼철되면서 창덕궁선정전 및 경훈각·창경궁 통명전으로 이전건립되었다. 광해군대에는 연산군대 처럼 황기와도 제작되어 청기와와 함께 왕의 귄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조형물로 여겨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궁궐 이외에 청기와가 사용된 곳은 조선전기에는 원각사·봉선사·장의사, 탕춘정·탕춘대장랑 등과 같이 왕실 관련 불교사찰이나 왕이 행차하던 명승지 등이었다. 조선후기에는 관왕묘·영은문 등에 청기와가 쓰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시대에 청기와를 부정적으로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하면서도 아름답고 귄위를 드러내기에 적절한 재료로 인식되고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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