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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북한연구학회 북한연구학회보 북한연구학회보 제9권 제1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1 - 22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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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련군이 한반도 해방에 준 영향의 실제를 대일참전의 준비와 경로를 통해 해명하였으며, 한반도 해방에 대한 북한 측의 인식이 해방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추적하였다.소련의 ‘조기’ 참전은 미국의 원폭투하에 일본이 먼저 항복할 것을 우려한 스탈린의 초조감과 참전 약속 일자의 준수 명분이 결합되어 이루어졌다. 그것은 미국의 대일 원폭 투하와 함께 일본의 항전 의지를 꺾은 사건이었다. 소련군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피를 흘린 연합국 군대였지만 ‘유일한’ 해방자는 아니었다. 8.15 해방은 미국과 소련 어느 한쪽의 공헌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양자 모두가 나란히 승리한 결과였다.해방 직후 북한 지도부는 8.15 해방에 대해 미소 양국의 역할을 공히 인정하였다. 그러나 남북 분단이 가시화되면서 북한은 한반도 해방에서 미국이 포함되는 연합국의 역할을 제외하였고, 소련을 ‘유일한’ 주역으로 등장시켰다. 8.15 해방에 대한 소련의 공헌과 역할은 10년 남짓 북한의 역사를 지배하였다. 하지만 주체노선이 등장한 이후로 소련의 역할은 급속히 축소되었고, 그 자리는 김일성이 이끈 항일무장투쟁세력에게로 넘어갔다. 항일빨치산세력을 조선해방의 주역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하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해방에 관한 다양한 지면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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