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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1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47 - 28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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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한제국기 일본인 기술자의 활동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검토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한다. 주요 자료는 최근 발견된 이노우에 요시후미(井上宜文)의 사진첩이다. 이노우에는 기술자 및 기업가로서 활약한 그의 일생을 사진과 함께 기록해 두었다. 1899년 한성전기회사의 전차 차량 납품을 계기로 처음 한국에 건너온 이노우에는 1902년 궁내부 산하에 설치된 평식원의 기사로 고용되어 1906년 해임될 때까지 도량형법의 공포, 도량형기의 통일, 제작, 검정을 관리했다. 러일전쟁을 전후해서는 군기창을 건설하였고, 일본군에 종군하여 임시 막사를 짓기도 했다. 1910년에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일영박람회에 파견되어 일본의 기술력과 식민지경영,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풍부한 자원을 선전했다. 국책에 적극 협력한 것이다. 이러한 식민지화 과정에서의 주어진 사명을 다한 뒤 이노우에는 기업가로 변신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제약유통업, 광업, 유지공업, 토지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활동을 했으나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이노우에의 활동에는 ‘무관(無冠)의 농상(農相)’이라 불린 마에다 마사나(前田正名)의 영향이 있었다. 1907년 당시 이노우에는 마에다의 문하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대한제국기 한국에서 전개된 일본인 기술자 이노우에의 활동은 전기철도 차량의 제작이나 도량형의 통일과 개혁이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일본제국주의의 대외팽창과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이라는 국책 수행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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