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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94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77 - 222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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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시행된 산미증식계획의 기획자이자 실행 담당자였던 조선총독부 농업기술관료의 구성과 활동, 지방단위의 실무관료였던 지방비관리의 신설 및 활동을 살펴보았다. 조선총독부의 농업부서는 식민농정의 컨트롤타워로서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하기 위해 관련 부서의 확대가 있었다. 농무과 단일체제에서 ‘식산국 농무과-토지개량과’의 이원 체제, 나아가 ‘토지개량부’로의 분리 승격이 이루어졌다.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와 토지개량 관련 부서 고등기술관리는 도쿄제대 농학부 출신으로 1910년대부터 연속적으로 조선에 부임해 있거나 새로 부임하더라도 대부분 10년 이상 조선에 머무는 정착형 관료가 많았다. 이들은 조선의 농업・식량문제의 최고 전문가로 기능하면서 1937년 이후 전시체제기까지 조선의 전시 식량증산과 통제 관리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920년대 식민농정을 수행할 관리의 증원이 이루어졌다. 「조선도지방비령」-「조선지방대우직원령」에 근거하여 신설된 지방비 ‘대우관리’는 사회인프라 및 산업정책을 실행하는 기술관리 위주였다. 지방대우직원은 농업증산정책을 담당했던 산업기수가 가장 다수였다. 증원규모는 道의 경우 3배 정도 증가했고, 군에는 새로 기술관리(技手)가 배치되었다. 그러나 기술관료는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은 군당 1~3인 정도였다. 1920년대는 조선 농민들의 식민지배와 식민지지주제의 모순을 체험하고 이에 대해 저항이 일어나자 총독부는 무단 행정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정 정도의 당근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세련된’ 관리가 농민과 직접 대면하며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지배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관리의 증원은 토지조사사업 이후 지세의 증징에 따른 지방재정 확충이라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식민지 내부의 자원을 동원하여 보다 세련되고 효율적인 식민정책을 실행하려는 방안이었다. 지방 기술관리의 증원과 이들에 의한 식민농정 실행은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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