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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태동고전연구 태동고전연구 제41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67 - 9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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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는 중종에서 선조 연간의 맹자학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기초 연구로 조선 전기 군주와 핵심 관료들의 경술(經術) 인식을 󰡔국보보감(國朝寶鑑)󰡕의 내용을 중심으로 검토한 것으로 경학의 저변을 이해하는 문화다원론적 접근의 한 측면이다. 󰡔국조보감󰡕은 󰡔실록󰡕에서 가려 뽑은 것으로 그 내용이 선왕들의 공훈(功勳)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조선 군주들이 제왕학의 기본 교재로 널리 활용되었다. 󰡔국조보감󰡕은 곧 ‘모훈과 공로가 있어 특별히 기록으로 남긴 것’이기 때문에 󰡔실록󰡕에 대비하여 경세에 필수적인 내용으로 요약⋅정리한 것이다. 조선 전기 경술에 대한 역대 군주들과 핵심 관료들의 인식을 살피는 데에도 요긴할 것으로 보인다. 검토 결과 숭유억불을 기치로 내걸고 유학의 진흥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고자 한 조선 초기의 군왕들은 유교적 교양으로 무장한 여러 문신관료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국가경영을 진행하지만 그 구체적인 국면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관점에서의 면모를 포착할 수 있다. 제왕학의 심법(心法)을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국면에서는 경사(經史)의 조화로운 인식을 통해 효과적인 경세학의 방편으로 삼으려 했던 것을 볼 수 있고, 세조의 경우는 유학 뿐만이 아니라 음운학과 의학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불교에 대해서도 융통성을 보이며 활용하려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도 역시 경학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인식했지만 사대(事大)라는 정치적 요청에 의해 재술(製述)이 강조되었다. 성종에서 중종에 이르는 시기는 양성지 등의 건의에 의해 꾸준히 도서가 수집되고 정비되기도 했다. 중종조 조광조와 김안국 등에 의해 추진된 주자학 서적의 보급과 향약 등의 확산은 사회적 기풍을 일신시켰다. 기묘사화로 인해 그 기세는 일시 움추려 들기도 했지만 성리학적 이상을 견지한 신진사림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고, 성종 등이 시행한 강력한 숭유억불책은 저변에서부터 불교적 관습을 줄여가며 유교적 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했다. 이것이 󰡔국조보감󰡕의 기록, 특히 경술과 관련하여 검토된 내용이다. 이는 다시 조선 전기에는 성리학적 시야를 견지한 경학 주석서가 나올 수 없었던 이유를 확인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야를 제공해준다. 단적으로 말하면 성리학적 학문관의 미성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쉽게 말해 높은 경학적 성취가 없어도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거나 사회적 교양인으로 대접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한 과거에서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이 될 만한 표준해석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퇴계 이황과 미암 유희춘을 지나 율곡 이이에 이르는 시기를 지나면서 사상적으로나 언어학적인 성과가 축적되어 주자학의 문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정한 시각을 갖춘 경서언해라는 표준적 경전 해석이 가능해졌다. 또한 임병양란이라는 국가적 혼란기를 지나 사상통일이 요청되는 역사적 여건이 조성된 다음에야 조선의 사상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이다. 16세기를 기점으로 주석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인데 경서의 언해와 관련한 제반 문제는 후고에서 다시 상세하게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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