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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10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353 - 38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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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0년대 古庵大宗師(1899~1988)의 행적을 살핀 것이다. 고암은 曹溪宗 宗正을 역임한 한국 현대불교의 대표적 고승이다. 1988년 입적하였지만 수행자로서, 청정율사로서의 행적은 수많은 문도와 신자들 사이에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또한 3차례나 종정에 추대된 인물로서 현대 조계종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고암의 행적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고암은 1970년대 신흥사 조실로서 신흥사를 중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3차례 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했다. 교단사에서 1970년대는, 1954년부터 시작되어 10여년을 끌던 종단정화의 광풍이 지나간 후 정화의 정착과 敎政의 안정이 기대되던 시기이다. 그러나 중앙 종단의 권력과 각 사찰의 이권을 둘러싼 분규와 소송이 끊이지 않아 교단의 혼란과 위신 추락이 날로 더해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의 조계종의 종정은 지금과 같이 상징적 위상을 갖는 종정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종정은 종단정치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종단운영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고암은 종정으로서 종단정치에 관여하였고 때론 분규의 주역으로서 세간에 알려졌다. 고암은 1970년대 종정으로서 분규와 기강해이로 대혼란을 겪던 당시 승단을 이끌어야 했다. 수행이 바탕이 된 승단정화를 꾀한 고암은 종정유시를 통해 종회를 유보시키거나 총무원장 중심제로의 종헌개헌에 반발하는 등 종정의 권한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청정율사로서, 전국과 세계를 누빈 포교사로서 평생을 살았던 고암의 일생에서 1970년대는, 종단의 정신적 수장이라는 영광과 혼란뿐인 종단정치의 상처가 교차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 고암은 승단분규의 중심에서 정화과정에서 파생된 승단 내 문제를 인식하고, 정화의 완성과 당대 한국불교 승단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1970년대 고암의 행적연구가 현대 고승으로서 고암의 전반적 생애와 사상에 대한 연구와, 승단분규의 시대로만 규정된 1970년대 불교계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촉진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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