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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23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99 - 120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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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인으로서의 박제가가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박제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박제가는 軍職으로 5품관이었다. 따라서 박제가는 무에 관한 일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박제가는 무예도보통지와 병지의 편찬에 참여할 만큼 무예와 국방에 대한 충분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정조실록에는 박제가가 春塘臺 무과에 급제하였다고 밝히고 있어 많은 자료에서 그가 무과급제자로 소개되어 있으나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여하간 박제가는 1796년에 入直과 도성을 순찰의 行巡 및 侍衛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五衛將에 오르기도 하였다. 박제가는 1만리 떨어진 연경까지 4번이나 왕복할 정도로 건강하고 튼튼하였다. 그는 삼천리강산의 경치 좋은 곳을 올라서 비분강개하며 시를 읊기도 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원대한 사상을 만들어 나갔다. 그의 시는 금강산, 해금강, 백운대, 평양, 온양, 부여, 통진, 寧邊, 藥山, 永平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쓴 것들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보통사람 이상의 활발한 신체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박제가를 무인으로 평가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것에 대한 증거는 많이 있다. 박제가가 문인인가 무인인가라는 물음은 우문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문사들은 기본적으로 활쏘기를 하였고, 무에 대해서 기본적인 소양이 있었다. 한마디로 문무겸전의 삶을 살고자 하였고 그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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